출연연 융합으로 천연물 연구 역량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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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와 감염병, 안전한 먹거리, 기후변화 대응 등 바이오 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높아지면서 바이오경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과기정통부의 제3차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에 따르면 2020년을 기점으로 바이오산업이 반도체, 자동차, 화학제품의 3대 산업 규모를 초월해 2030년 4.4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여기서 특히 주목받는 것이 천연물 소재 분야다. 천연물이란 넓은 의미로 동물·식물·미생물 등 살아있는 유기체에서 기원하는 물질을 뜻하며 천연물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화장품뿐 아니라 비료, 농약, 천연색소·향료 등 다양한 산업적 활용이 가능한 소재다.
이 같은 천연물 소재가 질병의 예방과 극복 같은 인류 복지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사회문제 해결의 핵심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 제약업계도 천연물 기반의 의약품 개발에 도전,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나 아직 해외 진출 성과가 미비한 상황이다.
바이오경제 시대, 천연물 의약품 각광
이에 지난 19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 한국원자력의학원 등 6개 정부출연연구소가 공동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천연물 의약품 개발전략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하성도 KIST 강릉분원장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바이오 분야의 융합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이것이 천연물 혁신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연물은 인체 내에서 여러 성분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므로 단일 성분 위주의 연구 방식으로는 효능 분석에 한계가 있었다. 또 같은 천연물이라도 산지나 나이, 기후에 따라 성분과 효능이 달라서 사업화 과정에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화와 표준화에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이 큰 몫을 할 것이란 얘기다.
하 분원장은 성공사례로 인삼의 경우를 들었다. 그에 따르면 국내에서 경험적으로 입증되어 왔던 인삼의 효능을 스위스의 파마톤사에서 유효성분인 ‘사포닌’을 분리, 정제하여 과학적 기능을 규명함으로써 세계 인삼 제품 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연 매출 3억 달러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정부 R&D를 통해 연간 1499억 원 규모를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산발적 지원으로 인해 성과 창출이 미흡하고, 대부분 기업이 영세하고 R&D 역량이 미비하여 글로벌 경쟁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하 분원장은 “천연물 화장품이 해외 진출에 성공한 것과 우리나라 동아에스티가 산약·부채마(마과의 풀)를 원료로 개발 중인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를 미국 뉴로모파마슈티컬스에 1900억 원 규모로 기술 이전에 성공한 것을 봤을 때 글로벌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며 출연연에 축적된 인프라와 기술을 기업 지원에 활용한다면 천연물 제품의 과학화와 표준화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가능할 것이란 주장을 내놨다.
빅데이터와 AI 기반 바이오 분야 융합 가속화
그 이유는 AI 기반 신약개발 접근법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하 분원장은 “미국에서는 이미 AI 기업이 주도하여 신약 개발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유럽에서도 제약사와 AI 기업의 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AI 기반의 데이터 통합 분석을 통해 개발 기간을 단축하거나 성공 확률을 증대하는 등 신약 연구개발 추진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기반 신약개발 방법이 부분적으로 적용된 사례를 보면 스위스계 제약사인 노바티스(Novatis)사가 정량적인 대규모 프로파일링과 분자 모델을 통해 항암제 글리벡(Gleevec)를 개발에 성공한 경우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규모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천연물의 경우는 추출물 수준의 연구가 대부분이고 천연성분의 타깃 기반 연구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천연물 탐색 단계와 기업의 산업화 소재 개발 단계를 연결하는 중간 단계에서 공백이 생기고 그것이 죽음의 계곡이 되고 있다. 또 중소, 중견기업 중심의 천연물 제약기업이 데이터 부족으로 표준화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하 분원장은 지난 3월부터 진행되어 온 (가칭)바이오출연연 천연물 연구개발 협의체와 관련된 계획을 밝혔다.
그는 “KIST는 천연 화합물의 정보와 유용성분 분석 데이터로 천연물 식의약 소재를 탐색하고, 한국화학연구원은 구조-활성(표적) 관계로 최적 화합물을 합성하여 신기능 정밀화학소재를 개발하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데이터 관리와 공동 활용 체계를 통해 슈퍼컴퓨팅 기반의 연구를 수행하는 등 6개 출연연이 천연 화합물 기반의 신약 파이프라인 개발을 위해 기술 단계별로 강점이 있는 분야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구성하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출연연 기술 결집으로 천연물 연구 역량 강화
이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천연물 의약품 개발 플랫폼을 구축하여 생리 활성 천연물 데이터를 확보하고, 규격화된 천연성분 데이터를 축적함으로써 신규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허철구 ㈜베데스다 대표도 “전통적인 천연물 분석방법으로는 효능 검증이 어렵기 때문에 시대에 맞는 천연물 해석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며 출연연 융합 사업의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그는 “우리나라 R&D가 대부분 개인 과제 중심형이다. 그런데 천연물 연구와 같이 복잡한 과정을 개인 연구자가 모두 수행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특정 질병 관련 천연물의 성분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세포와 조직 수준의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출연연 고유의 기능을 연동한 기술 결집을 통해 역량 고도화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