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美 FDA 승인 치매치료제 4개… 성과 더뎌도 희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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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美 FDA 승인 치매치료제 4개… 성과 더뎌도 희망 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묵인희 서울대 의대 교수는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3상에 있는 후보 가운데 임상을 통과하는 새로운 약이 반드시 나올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며 “5∼10년 내에 치료제 분야에 새로운 사례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책임연구원은 “과거에는 치매 치료제라고 하면 심각하게 진행된 중증 치매를 떠올리고 이를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 집중해 개발이 더 어려웠는데, 요즘은 가벼운 수준의 인지장애(MCI)나 초기 치매 때 병의 진행을 늦추는 데 더 관심이 많다”며 “지금 임상시험 중인 약 가운데 일부도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아밀로이드 제거 등 임상시험 성과
임상 3상 시험 중인 차세대 치매 치료제의 절반 이상(53%)은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연구자들이 치매의 원인으로 주목해온 뇌 속 노폐물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잡는 기능을 한다. 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뇌에 들어가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 자체 또는 그 단백질 일부를 찾아내 제거하는 방식이다. 비유하자면 범인의 냄새를 기억한 경찰견을 풀어 딱 범인만 찾아 추격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를 위해 인체 내 면역 물질인 항체를 변형해 이용한다. 이 방식의 약 가운데 미국 생명과학회사 일라이 릴리의 솔라네주맙과 제약사 화이자의 후보 약물이 임상 3상까지 가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각각 2016년 말과 올해 초에 임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며 결국 연구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기대는 남아 있다. 최근 바이오젠의 아두카누맙이 임상 3상 과정에서 실제로 뇌 속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고, 인지 능력도 개선한다는 사실이 확인돼 임상시험 기간이 연장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또 다른 방식은 뇌 안에 아밀로이드 베타가 아예 생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체내에서 몇 개의 효소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재료’ 물질을 잘라 만든다. 이 과정에서 효소가 단백질을 정상 길이보다 약간씩 길게 자르면 마치 머리카락이 뭉치듯 아밀로이드 베타가 자신들끼리 엉기면서 뇌 속 노폐물이 된다. 이 문제를 일으키는 효소를 억제하면 노폐물 생성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셈이다. 이 방식으로 치매 치료제를 만드는 대표 주자인 글로벌 제약사 머크는 유력 후보였던 MK8931의 임상 3상 실패를 2017년 초에 선언했다. 하지만 노바티스, 릴리, 얀센 등이 아직 임상 2, 3상 시험을 계속하고 있다.
○ ‘타우 단백질’ 노리는 약 급부상
‘주류’인 아밀로이드 베타 대신 또 다른 뇌 속 노폐물 단백질인 타우 단백질을 노리는 약도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타우 단백질은 뇌세포 안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정상일 땐 신경세포의 구조를 이루지만 치매가 진행되면 자기들끼리 엉켜 덩어리가 돼 신경세포를 죽인다. 뇌세포 안에 위치해 약으로 치료하기가 한층 어렵다.
학회에서는 아밀로이드 베타 연구파와 타우 연구파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국도 5년여 전부터 연구가 크게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임상 3상에 이른 약은 아직 많지 않아 2017년 기준으론 하나뿐이지만 후보가 점점 늘고 있다.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란 ‘노폐물’을 청소해 치매를 치료하는 방식을 떠나 아예 다른 대상으로 관심을 바꾼 연구도 있다. 박 책임연구원은 ‘성상교세포’라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성상교세포는 뇌세포 중 신경세포를 제외한 세포의 일부다. 과거에는 신경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등 신경세포를 돕는 역할로 알려졌지만 다른 중요한 기능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치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는데, 치매에 걸린 경우 성상교세포가 과하게 활동하면서 신경을 억제하는 물질인 가바(GABA)가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진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박 책임연구원은 “가바는 ‘마오비(MAOB)’라고 하는 효소가 만든다”며 “이 효소에 일시적으로 결합해 가바 생성을 억제시킬 수 있는 새로운 후보 약물을 개발했다”고 했다. 박 책임연구원은 비슷한 후보 물질을 추가 발굴하는 한편 이런 일이 생기는 메커니즘도 밝혀 다른 질병에 확대 응용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치매는 근본 원인, 조기 진단, 치료제 개발 등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난제다. 뇌가 인류 최후의 블랙박스이듯, 치매 역시 의학계의 마지막 블랙박스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치료제는 이런 침묵을 깨기 위해 다른 어떤 분야보다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크든 작든 성공 사례가 나와야 치매 정복이라는 긴 여정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